29/11/2013
동료 교수님들께,
교수평의회에서 총투표 결과를 알려왔습니다. 신촌 캠퍼스 908명 교수 중 48.2% 투표, 대안 지지율 86.47% (377명), 본부안 지지율 13.53% (59명).
이 결과에 대해 많은 분들이 놀라워하십니다. “연세대학은 그래도 살아있다!” “예상 밖의 의미 있는 성과.” “그간의 엄청난 방해를 생각하면 기적적인 투표율!”
요즘처럼 투표를 하지 않는 세태에 48%가 투표를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공청회와 투표 기간 동안 본부가 가해온 온갖 방해 행태를 감안할 때 ‘기적’이라는 말이지요. “‘성명서 정국’을 바라보며 저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되어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라고 격려해주신 분도 있었으니까요.
본부는 교평의 학내 온라인 시스템 사용을 금했고, 원주와 의료원 교수들로 하여금 투표의 부당성 운운하는 성명서를 내보내게 했고, 교무처로 하여금 불법, 정보누출, 조작가능성을 들어 투표 불참을 종용하는 협박성 공문까지 세 차례나 내보냈습니다. 마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진압하려는 듯한 군사작전의 분위기에서 재임용이나 승진을 앞둔 젊은 교수들이 투표를 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성공동체의 상호 존중과 신뢰 원칙을 모독한 본부의 비이성적, 비민주적 행태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깊은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현 상황에서 투표율이 30%를 넘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본부에 실망을 거듭하는 동료들의 공분의식에서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번의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86%)은, 우리가 제시한 대안을 지지한 때문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교수들을 진압 대상으로 간주하는 현 본부의 폭력적 행태에 대한 거부의 의미입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과거 정갑영 총장을 인준했던 신촌 교수들의 반이 등을 돌렸다는 말이지요.
본부는 이 투표의 결과와 내포된 의미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수 교수들의 일치된 목소리를 올바르게 들으십시오. 일차적으로 86%가 찬성을 하는 대안을 채택하여, 백양로 80%를 파는 현 사업안을 대폭 수정하십시오.
설령 교수들 100%가 반대해도 현 사업안 추진에는 변화가 없다고 교평 의장단에 선언하셨다던 정갑영 총장께서는 부디 마음을 비우시고 학내 구성원들의 지성과 정성의 결과물인 대안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단의 결단으로 이 위기를 타개하셔야 합니다.
지난 번 메일에서도 썼습니다만, 백양로 사업은 연세의 수백 년을 좌우할 중대한 사업입니다. 인문사회대 및 공대 교수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낸 대안은 ‘탁월한 안’이 아니라 ‘상식적 안’입니다. 우리가 반대를 해온 이유는 본부안이 너무나 ‘몰상식적’이어서였습니다. 본부는 공사를 중단할 때 발생할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걱정하지만 연사모 대안은 애초부터 본부의 안을 승계해서 큰 비용을 치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입니다. 백양로를 파지 않고서도 본부가 추진하는 ‘차 없는 캠퍼스’, ‘교육 문화 공간 확보’, ‘필요 주차장 확충’을 모두 충족시키는 안이며 아직 대공사가 들어가지 않은 지금, 일찍 채택하면 할수록 막대한 손실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안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을 잇는 백양로 일부만 파고 대부분의 백양로는 살려둡니다. 주차장은 주변의 ‘자투리’ 땅에 짓습니다. 세부 실행 면에서도 순차적 건설이 가능하기에 건축 기부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해도 학교 재정에 무리를 주지 않는 이점이 있습니다. 실제 공사비는 필요한 주차장 규모에 따라 수 백 억 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백양로를 전통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명소로 남김으로 몇 천 억, 몇 조원을 훨씬 넘는 이득을 얻게 됩니다. 실제 공사 기간은 서울시 건축 심의를 받는 기간을 제외한다면 일 년 반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로써 구성원들이 공사로 인해 겪게 될 불편함과 피해는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공청회와 투표 실시를 위해 전력 투구해주신 제17대 교수평의회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부탁드립니다. 연세의 미래를 위해 백양로 대안의 추진에 적극 힘써주시고, 아울러 그간 노정된 본부의 언론 통제와 폭력성에 대해 전체 교수들의 이름으로 비판적 문제 제기를 해주십시오. 이제는 우리 대학의 거버넌스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교평 내에서도 내년 봄의 총장 중간 평가와 대학 평의회 관련 논의가 일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미 사회과학대학 내부에서는 백양로 사태가 연세대학교 지배구조의 미비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자각과 함께, 총장 간선제 이후 단과대학별 자율성이 급격히 줄어든 현 상황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급변하는 대학 현실을 고려할 때, 각 단과대에 맞는 비전이 제시되고 연구·교무·행정 또한 그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교원 임용과 승진 심사 등을 포함한 모든 주요 업무를 대학 행정 본부가 일괄 처리하는 현 체제에서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평교수들이나 단과대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의견수렴의 통로 자체가 제한된 상태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학내 사업들이 엄청난 실수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일 것입니다.
백양로 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용량’이 되지 못하는 본부 ― 현 본부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지금의 체제 안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가 자체적 성찰 없이 “뭐든 할 수 있다”고 밀어붙이다보니 이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의 거버넌스는 단과대학을 포함한 학교 내 자치단위별 자율성이 보장되는 형태로 가면서, 본부는 중지를 모은 비전과 협치를 바탕으로 단위별 이해와 업무를 조정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총장과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도 일고 있으며, 이는 시의적절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연세 대학이 어제의 총투표를 시행해 낸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며, 투표 결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연세의 개혁에 중요한 계기를 던질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힘들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그간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독선적으로 비쳐졌다면 너그럽게 헤아려 주십시오. 너무 절박하고 조급했기에 미처 두루두루 살피는 데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동행해주신 것,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백양로를 위한 ‘연사모’ 운동은 이 시점에서 제1막을 내리고, 앞으로 전개될 더 나은 2막의 움직임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백양로 천막은 강제 철거 되었지만, 우리의 보이지 않는 천막은 건재합니다. 377명 교수님의 뜻을 기억하고 받들겠습니다. 조만간 백양로의 재창조를 넘어 연세대학의 재창조를 도모하는 교수들의 모임이 일어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학사회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정갑영 총장도 그 일원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동료 교수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갈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감사합니다.
2013년 11월 27일
연세 캠퍼스를 사랑하는 교수 모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