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2013
부끄럽지만 리뷰. 강력한 스포일러.
열한시(2013) - 이민재
보는 내내 불만이 조금씩 쌓였다. 이미 헐리웃 타임슬립 SF들로 가뜩이나 눈이 높아진 관객들 앞에서 ‘그래도 우리 이정도 했으니까 괜찮지않냐?’ 라는 모습이 너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었다.(뭐 설령 이런 생각을 안했다 치더라도..)
'오오 한국영화에서 이런 걸 볼 수 있다니' 싶을 정도로 미술이나 특수효과는 분명히 놀라운 발전이었던 것 같은데.. 연출, 각본, 연기는 보기에 조금 민망했다. 각본 자체에 결함은 없어 보이지만(당연한 거지만), 인물들이 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안가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분명 인물들의 행동이 자연스러우면서, 미래가 계획대로 진행되는 각본을 구상했을텐데, 그 자연스러운 행동이랍시고 끼워 맞춘 것이 고작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정신줄을 놓는 것’이라는 게 좀 납득하기 힘들었다. 뭐 한두명도 아니고 등장인물들이 다 이러고 있으니..
몰입감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는 있었다. (그래도 소재는 잘 잡았다고 보는 게, 대체 하루만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좀 더 결정적으로 아쉬웠던 걸 말하자면, 분명 열한시의 긴장감은 관객이 ‘쟤 저기 가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생기는 것일텐데, 그저 ‘얘가 사실 이래서 죽은거임’이라고 말하는 연출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진 모르겠는데) 예를 들어 처음 문순과 남궁숙이 시설에 들어가서 화재사고를 내기 전에, 이 둘이 가고 있는 시설이 CCTV에서 화재가 났던 그 시설임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서스펜스의 한 부분이 그냥 날아간 것이다. 편집만 적당히 잘 해줬어도 이런 부분이 잘 살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말 처리도 다소 이해가 안 간다. 차라리 적당이 끊었으면 남았을 여운을 날려버린 느낌이다.
사실 어쩌면 이 모든게 다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보면서 가장 거슬렸던 건 연기였다. 좀 과장 보태서, 마치 액션게임에서 필살기를 외치듯 전문용어를 말하는 걸 보면 짜증이 솟구친다. 보다보면 소름이 돋는다. 이거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연기가 다듬어진 느낌이 아니었다.(예고편만 봐도 누가 그런지 알 수 있다.)
아 물론, 이렇게 단점만 있는 영화라는 건 아니고,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컸다. 좋은 장면들도 꽤 있었고,(첫 씬에서 러시아 회장 휠체어 보여줄 때, 찬반투표 할 때 원형으로 카메라가 도는 컷 등) 중반부에선 모든 인물들이 패닉에 빠지니 의도대로 막막함이 와닿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영화 보다보면 확실히 시간은 빠르게 잘 가니, 시간 죽이고 싶으신 분들에겐 추천해 드립니다. 근데 기말시즌이라 그럴 사람이 있을라나..